❄️겨울 한라산 등반 실패기(3)☃️
꿩 대신 닭이라고, 대설주의보로 인해 한라산 등반기가 아닌 오름 탐험기로 전환된 나의 일정. 새별오름을 가볍게 클리어한 후 잠깐 숙소에 돌아와서 하루 계획을 세웠다. 또 어느 오름을 가 볼까.
오쉐어에서 추천해 준 오름 중, '물영아리 오름'이라는 곳이 눈에 들어왔다. 일단 가는 길을 살펴보니 교통통제된 곳이 없고, 이름도 많이 들어본 곳이 아니니 여기로 선택! 다시 부지런히 차를 몰았다.
⛰️ 물영아리오름
📍 제주 서귀포시 남원읍 수망리 산188
🅿️ 제주 서귀포시 남원읍 수망리 산182-7
네이버지도
물영아리주차장 전기차충전소
map.naver.com


서귀포시 남원읍 수망리에 위치한 물영아리오름. 동네 이름부터 뭔가 물의 기운이 가득하다. 물영아리오름의 화구호는 람사르 습지로 지정되어 있다는 안내판이 입구에 적혀 있다.
눈이 꽤 쌓였고, 간간히 등반객들이 하얀 길을 걷고 있다. 나 또한 아이젠과 스패츠, 등산스틱 등을 착용하고 그 뒤를 따라나섰다.




물영아리 생태공원 입구를 지나 오름 입구 쪽으로 걸었다. 삼나무와 소나무가 함께 우거져 있는 숲이 먼저 우리를 맞이해 준다.
처음엔 하얀 들판을 만났다. 울타리와 철조망이 쳐 있는 걸 보니, 아마도 말이나 소를 방목하는 목초지인가 보다.




아마도 저 목초지 건너 솟아오른 저 산이 물영아리오름이겠구나 싶다.
아까보다 더 거세진 눈발이 끊임없이 흩날리고 있다.




온종일 내리는 눈 때문에 온 세상이 차분한 흑백사진으로 보이지만, 요렇게 채도를 높여주는 빨간 열매를 만날 때면 뭔가 생기발랄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약간 철 지난 크리스마스 같기도 하다.




목장 반대편에 도착하자, 본격적인 등산로가 시작된다.
삼나무, 소나무, 측백나무, 편백나무 등이 적절히 섞인듯한 숲 속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눈을 맞은 쪽 나무줄기가 하얗다. 오늘 바람이 어느 쪽에서 불어오고 있는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발자국은 많은데, 정작 함께 걷는 사람들은 찾아보기가 어렵다. 이 넓은 오름에 사람이 아주 간간이 보일 뿐이다. 덕분에 온전한 침묵 속에 산을 오른다.
귀를 기울이니 나무에 눈이 쌓이는 소리, 나뭇가지가 눈의 무게를 못 이겨 삐그덕 대는 소리 등이 온전히 고막으로 전해진다. 오랜만에 찾아온 침묵의 시간이 참 반갑다.



그리고 갈림길 등장.
빠르지만 가파른 계단길로 갈지, 조금은 느긋하게 능선길과 계단길 조합으로 갈지 묻는다. 남자라면(?) 계단길이지!





그리고 본격적으로 계단이 시작되었다. 아까 남자 어쩌고 저쩌고 한 과거의 나를 원망하며 계단 오르기 시작.
아이젠을 차고 오지 않았더라면 꽤 어려웠을 뻔했다. 쌓인 눈의 양이 은근히 많아, 올라가는 길이 마냥 쉽지는 않다.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이럴 땐 정인의 '오르막길'을 속으로 불러 줘야지.




어차피 혼자 온 등산인데 조금 늦으면 어때. 하늘도 보고 땅도 보고 사진도 찍으며, 저질체력을 천천히 끌어올렸다.
때마침 눈보라가 잠시 멈추고, 나무 사이로 쨍한 햇살이 들어온다.
나무로 가득 찬 숲 속에서 만난 햇살이 은근히 반갑다.




중간에 셀프타이머 맞춰놓고 촬영하던 중에 카메라가 계단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바람이 워낙 강하게 분 탓이다.
렌즈 경통 사이로 눈이 들어갔다. 이거 습기 제거 잘 될지 모르겠다. 그래서 카메라는 주머니에 넣고 등산에만 신경을 썼더니 금세 정상 부근에 도착했다.
이제는 내리막길. 조금만 내려가면 물영아리오름 분화구 습지와 만날 수 있다.


나무로 둘러싸인 분화구 습지에 도착했는데, 지금은 습지라고 하기엔 조금은 황량하다. 물은 없고 풀이 우거진 분화구의 모습이다.
아마 여름에 비가 많이 오면, 빗물이 고여 습지를 형성하는 것 같다.
365일 내내 습지인 건 아닌 것 같다.



어디서 흘러들어온 물이 아닌, 강수로만 이루어진다는 습지 안내판 설명. 2006년에 제주도 최초로 람사르 습지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제주도엔 물영아리오름 습지를 포함하여 총 다섯 곳의 람사르 습지가 있다.



잠깐 호흡을 고른 후, 하산을 시작했다. 이번엔 올라왔던 길과는 조금 다른, 계단길과 능선길의 조합이다.
일단 아까의 그 가팔랐던 계단이 아닌 적당히 완만한(?) 계단과 산길이라 걷기에 참 좋다.


아까보다 눈보라가 훨씬 심해졌다. 얼굴에 눈이 자꾸 부딪히니 순간 엄홍길 대장님이 된 것 같다. 하지만 덕분에 다시 보지 못할 장관을 보고 있다.
수묵화 같은 분위기의 숲 길을, 눈보라를 맞으며 나 홀로 걷고 있다.


중간에 위치한 전망대.
누군가가 눈오리 대가족을 만들어 놓았다.
덕분에 힘든 산행에 잠깐의 여유가 생겼다.



점점 지상(?)이 가까워진다.
사람들이 중간중간 만들어 놓은 눈사람과 눈오리들을 보며 마지막까지 힘을 내서 걸어 보았다.






그렇게 걷다 보니 다시 등장한 산 아래 목장.
물영아리오름 습지를 중심으로, 다양한 탐방로가 조성되어 있다.
나중에 물영아리오름을 한 번 더 오게 된다면, 오늘 걸었던 길 말고도 다양한 길들을 걸어봐야겠다,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생각보다 오래 걸었다. 눈을 맞으며 오름을 걷는 일은 체력적인 부담이 있긴 하지만, 내리는 눈이 주는 적막함과 고요함을 온전히 느낄 수 있어서 참 귀중한 시간이었다.
점심때가 지났기에 차 안에서 김밥과 컵라면을 먹었다. 한라산 등반 준비하느라 보온병에 뜨거운 물을 받았었는데, 진달래밭대피소 대신 물영아리오름 주차장에서 이렇게 컵라면을 먹는다.
여러모로 기억에 남을 제주 여행이다.

20260102(금)
서귀포시 남원읍 오름 <물영아리오름>
Canon PowerShot G7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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