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P인 나는 여행땐 최대한 J의 성향을 장착하려 하지만, 오늘같이 비 오는 날은 여지없이 P성향으로 돌아오곤 한다. 초록초록하고 하늘하늘한 제주 날씨를 바라고 왔거늘, 비 오는 제주는 계획에 없었단 말이다.
그래서 근처 실내 관광지를 찾아보다 알게 된 곳, <포도뮤지엄>. 굳이 여기까지 와서 미술관을 가야 하나 싶었는데, 평도 나쁘지 않고, 무엇보다 비가 그칠 것 같지 않았기에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입력했다.
포도뮤지엄 /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 산록남로 788
한적한 곳에 자리잡은 작은 미술관이라 사람들이 많지 않을 줄 알았는데, 꽤나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방문하고 있었다. 그래서 어떤 전시가 열리고 있는지 더더욱 기대가 되었다.
우리가 방문했을 땐 '어쩌면 아름다운 날들'이라는 주제의 전시가 진행 중이었다. 마침 오늘(어린이날)은 가정의 달을 맞아 무료입장이 가능한 날이었기에, 속으로 '럭키비키'를 외치며 안으로 들어갔다.
전시는 열 명의 작가들의 '나이 듦'에 대한 시선과 생각들을 공간에 밀도있게 펼쳐놓고 있었다.
나도 언젠가 나이가 들어 갈텐데,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연이어하게끔 만드는 작품들이었다.
내 삶의 조각들이 하나 둘씩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들고, 이런 순간들이 다시 모여 미래의 나를 만들어 갈 것이다.
이런 조각들은 홀로 파편화되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삶에서 마주친 모든 사람들과 마치 씨실과 날실처럼 서로 얽히고설켜 함께 연결되어 존재하게 된다.
그중 아름다운 것은 무엇이고, 아름답지 않은 것은 또 무엇일까.
전시회장 입구에 적혀있던 문구 중, 맨 마지막 문구가 전시를 보는 내내 마음에 남았다.
우리가 연결되어 살아갈 순간순간이 어쩌면 모두 아름다운 날들이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나이 들어 내 기억이 손에 쥔 모래알처럼 흩어지더라도, 누군가의 삶 속에 연결되어 있는 나는 여전히 아름다운 날들을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오랜 시간을 머물렀던 작품은, 나무와 빛을 이용한 아래의 작품이었다.
생명을 머금은 나무 주위로 한 사람의 일생이 천천히 흘러갔다. 그것은 때로 찬란했고, 또 쓸쓸했으며, 언젠가 끝이 있어 보였다. 하지만 나무는 조금씩 성장하고, 땅에선 다시 새싹이 돋았다.
평소 미술관과 그리 친하게 지내지 않았던 터라, 큰 기대 없이 방문한 포도 뮤지엄.
그렇게 우연히 만나서 더 아름다웠던 장소로 꽤 오랫동안 기억될 것 같다.
20240505(일)
제주 서귀포 안덕면 미술관 <포도뮤지엄>
Sony A7C + Tamron 28-75mm f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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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뮤지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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