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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2016_오스트리아, 체코

[2016 오스트리아&체코] #1-1. 신혼여행 첫날, 떨어져 앉다

  10월 15일. 오지 않을 것만 같던 그 날이 왔다.

  군대 가기 하루 전날 밤도 이랬던거 같긴 한데... 다른 이유지만 하여간 잠이 오질 않는다.

  웨딩샵 예약이 새벽 5시 30분이다. 그러니 결혼식이 끝나고 포항역에서 KTX에 올라탄건 대략 일어난지 13시간쯤 지났을 무렵인 오후 다섯시. 옷은 여행 복장으로 갈아입었다지만, 얼굴과 머리는 메이크업한지 12시간은 족히 지난 상태다. 얼굴엔 개기름이 좔좔좔. 그것보다 자꾸만 눈이 감겨 죽을 지경이다. 다행히 종점인 서울역에서 공항철도로 갈아탈 계획이다. 일단 좀 자자.

포항에 KTX역이 생겼다. MB가카 덕분인가(읍읍).

  저녁 7시 반쯤 서울역에 도착했다. 오랜만에 공항철도를 타러 내려간다. 직통이나 일반이나 10분정도 차이밖에 나지 않으니, 그냥 일반열차를 타기로 한다. 날은 이미 어둑어둑.

오랜만에, 익숙한 그 곳

선정누나가 선물해준 책. 아내는 벌써 그 후의 일상이 궁금한 모양이다.

  공항에 도착했다. 일단 씻는게 급선무. 환승동에 있는 무료 샤워실을 이용하기엔 시간이 넉넉하지 않아서, 눈물을 머금고 공항 지하에 있는 찜질방 사우나를 이용하기로 했다. 참고로 여기 사우나 이용 금액이 2만원이다, 2만원... 하아... 하지만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다. 

  물과 비누라도 2만원어치 넘게 쓰고 나가고 싶었으나 시간이 그닥 넉넉하지 않다(사실 조금은 넉넉한 줄 알고 있었다). 어쨌든 열심히 씻고 나왔다. 참고로 여기 사우나 안에 캐리어 못 들고 들어간다. 그러니 갈아입을 옷들을 챙겨서, 입구에 캐리어를 맡겨 둔 후 들어가야 함.

11시 10분 비행기...였다. 왜 50분인줄 알았을까.

  어쨌거나 목욕하고 나오니 상쾌하긴 하다. 땀에 쩔은 옷 대신 상큼하게 추리닝(?)으로 갈아입고 장거리 비행을 준비한다. 그리고 3층으로 올라와서 비행기 시간표를 봤다. 23시 10분 TK091 이스탄불행 터키항공. 환승해서 비엔나로 갈 예정이다. 어라, 23시 10분...?

  망했다. 우리 둘다 뭐에 홀린듯, 23시 50분 비행기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미친듯이 터키항공 체크인 카운터로 뛰어갔다. 당연히도 승객들이 하나도 없다. 헐. 다행히 카운터 닫히기 전이다. 그런데... 체크인이 안된다. 오버부킹이다.

"아니, 분명히 90일 전에 체크인 해서 자리 지정까지 다 했는데요...?"

"그렇긴 한데, 오늘 고객님들이 늦게 오셔서 이미 이코노미는 자리가 꽉 찼습니다, 어쩌고 저쩌고..."

"헐 그럼 어쩌.."

"그러니 비즈니스석으로 업그레이드 해드릴께요. 그런데.."

(화들짝 놀라며 기쁘긴 한데 약간 억누르는 느낌으로)"네에.. 네?"

"그런데 자리가 떨어져 있으세요."

"헐... 저희 신혼여행인데요.. ㅠㅠ"

"죄송합니다. 어쩔 수 없네요."

  그런 대화가 오가던 중, 이제 공식적으로 와이프로 업그레이드된 아내와 눈이 마주쳤다. 눈빛이 복잡미묘하다. 그 감정, 알 것 같다. 떨어져 앉아 가는 슬픔을 충분히 커버하고도 남을 비즈니스석 탑승의 기회. 어쩔 수 있나 뭐...

  아무튼 그렇게 체크인을 하고, 보딩패스를 받아들고 출국장으로 들어섰다. 시간이 많지 않다. 보딩타임까지 얼마 남지 않은 까닭이다. 어휴 그런데 게이트는 왜 이리도 먼 것일까. 또 다시 열차를 타고 이동했다.

  겨우겨우 도착한 111번 게이트, 세잎이다.

TK091, 인천에서 이스탄불로

당당하게 비즈니스석 통로로 입장했다

  숨 돌릴 틈도 없이 탑승구로 들어섰다. 다행히 아직도 사람들이 탑승중이다. 이코노미쪽엔 길게 줄이 늘어서 있다. 하지만 우리는 비.즈.니.스! 길게 서 있는 사람들을 지나서 비즈니스석 입구로 들어선다. 뭔가 걸음걸이도 품격있게 걸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내 꼴을 보니 추리닝에 운동화. 이대로 학교 가서 체육수업하면 될 복장이다. 걍 걸어갔다.

  비행기 안에 들어섰다. 승무원이 티켓을 보더니 자리를 안내해 준다. 우어...

  그동안 이 옆을 수없이 스쳐 지나가며 얼마나 부러워 했던가. 조심스럽게 자리에 앉아야 할 것만 같다.

 

20161015 Gate No.27 by 민군:-)

Nikon D3300 + 18-55mm

gateno27.tistory.com